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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 IT 이야기

HBM, AI 시대의 판도를 바꾸다 2부. 최고의 파트너, AI와 HBM

 

HBM, AI 시대의 판도를 바꾸다
2부. 최고의 파트너, AI와 HBM

GPU는 왜 HBM 없이는 제 속도를 낼 수 없을까?

안녕하세요! [HBM, AI 시대의 판도를 바꾸다] 시리즈 2부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1부에서는 컴퓨터의 ‘두뇌(GPU)’와 ‘기억장치(메모리)’ 사이의 속도 차이, 즉 ‘메모리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HBM이 탄생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HBM이 어떻게 인공지능(AI)을 만나 현시점 최고의 기술 파트너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AI의 심장인 GPU가 HBM 없이는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데이터를 먹고 자라는 AI, 그리고 거대한 데이터의 벽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비롯한 최신 AI는 말 그대로 데이터를 먹고 성장합니다. 수십억, 수조 개에 달하는 매개변수(Parameter)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이 매개변수 하나하나가 AI의 지식과 판단의 근거가 되죠.

AI의 성장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뉩니다.

  1. AI 학습 (Training): 인간이 방대한 양의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것처럼, AI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입력해 패턴과 관계를 스스로 배우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모델의 규모에 따라 수일에서 수개월까지 걸릴 수 있습니다.
  2. AI 추론 (Inference): 학습을 마친 AI가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거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등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AI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AI는 학습한 방대한 지식을 빠르게 참조해 실시간으로 답변을 만들어냅니다.
용어설명: LLM (Large Language Model)
대용량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자연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 문장 생성, 번역, 요약 등 다양한 언어 처리 작업에 활용됨. 대표적인 예로 ChatGPT, GPT 시리즈, BERT 등이 있음
용어설명: 매개변수 (Parameter)
인공지능 모델 내부에서 학습을 통해 조정되는 변수. 모델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결과를 생성하는 방식을 결정함. 매개변수는 LLM 내부에서 학습을 통해 조정되는 변수로, 모델의 성능과 직결됨.
용어설명: AI 학습 (Training)
인공지능 모델에 대량의 데이터를 공급하여 모델이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패턴, 규칙, 관계 등을 스스로 배우게 하는 과정.
용어설명: AI 추론 (Inference)
학습이 완료된 AI 모델을 사용하여 새로운 데이터에 대한 예측이나 판단을 내리는 과정. AI가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

여기서 핵심은 '속도'입니다. 학습 단계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개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추론 단계에서는 사용자가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줘야 합니다.

비유를 들어볼까요? AI를 세상의 모든 책이 있는 거대한 도서관을 관리하는 천재 사서(GPU)라고 상상해봅시다.

사용자가 "우주에 대해 알려줘"라고 질문하면, 이 사서는 순식간에 우주와 관련된 수백만 권의 책(데이터)을 찾아 종합해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만약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찾아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아무리 똑똑한 사서라도 답변을 하는 데 한참이 걸릴 수밖에 없겠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메모리의 한계, 즉 ‘메모리 병목 현상’이 AI 시대에 더욱 치명적인 문제로 부각된 것입니다.

 

1024차선 고속도로, HBM이 AI의 속도를 바꾸다

1부에서 우리는 기존 D램을 '단층집'에, HBM을 '초고층 빌딩'에 비유했습니다. 데이터 전송 속도, 즉 대역폭의 관점에서 이 비유를 확장해 보겠습니다.

  • 기존 D램/GDDR: 데이터가 오가는 길이 좁은 1차선 국도와 같습니다. 차(데이터)가 조금만 몰려도 금세 정체가 발생하고, GPU는 데이터가 도착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직으로 쌓아 올린 D램 칩 사이사이에 수천 개의 데이터 통로(TSV)를 뚫어, 마치 1024차선 이상의 초광폭 고속도로를 만든 것과 같습니다. 데이터가 막힘없이, 엄청난 속도로 GPU에 공급됩니다.
HBM의 구조. D램 칩을 수직으로 쌓고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해 데이터 고속도로를 만듭니다.

 

이 ‘데이터 고속도로’는 AI의 성능을 극적으로 향상시킵니다.

  • 학습 시간의 단축: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GPU에 쉴 새 없이 공급하여 AI 모델의 학습 시간을 크게 줄여줍니다. 개발자들은 더 빠르게 모델을 개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 지연 시간(Latency) 감소: AI 챗봇이나 실시간 번역 서비스에서 사용자의 요청과 AI의 응답 사이의 시간 차이를 지연 시간이라고 합니다. HBM은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전달해 이 지연 시간을 최소화하고, AI가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럽고 빠르게 반응하도록 만듭니다.
용어설명: 지연 시간 (Latency)
어떤 작업에 대한 요청을 보낸 시점부터 그에 대한 응답이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이 시간이 짧을수록 시스템의 반응 속도가 빠르다고 평가됨.

결국 HBM은 GPU가 가진 잠재력을 100% 끌어내 AI의 두뇌 회전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인 셈입니다.

 

조용한 혁신가: 데이터 센터의 효율을 높이다

AI 혁신의 뒤에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거대한 데이터 센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데이터 센터들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바로 천문학적인 전력 소비와 한정된 물리적 공간이죠.

 

데이터 센터 내부 네트워크실

놀랍게도 HBM은 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 뛰어난 전력 효율성: HBM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GPU 바로 옆에 배치합니다.  데이터가 이동하는 물리적 거리가 극적으로 짧아지기 때문에, 신호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듭니다.  이는 마치 주방 바로 옆에 식탁을 두어 음식을 나르는 수고를 더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HBM은 기존 메모리 솔루션보다 훨씬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 데이터 센터의 운영 비용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 획기적인 공간 효율성: HBM은 D램 칩을 평면이 아닌 수직으로 쌓아 올리기 때문에 훨씬 작은 면적을 차지합니다. 이를 통해 데이터 센터는 한정된 공간에 더 많은 AI 서버를 배치하고, 컴퓨팅 밀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용어설명: 데이터 센터 (Data Center)
수많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 등을 모아놓고 24시간 365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시설. 클라우드 컴퓨팅과 AI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

HBM은 AI의 성능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는 동시에, AI가 살아가는 터전인 데이터 센터를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조용한 혁신가이기도 합니다.

 

오리건주 더델러스에 위치한 구글의 데이터 센터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_수증기가 보일때 냉각탑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중

다음 이야기 예고

AI와 HBM의 만남이 왜 필연적이었는지, 이제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HBM은 단순히 빠른 메모리가 아니라,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현실로 구현하고 가속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그렇다면 HBM을 이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기술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다음 3부에서는 데이터를 위한 초고층 빌딩, HBM을 구성하는 핵심 기술인 3D 적층, TSV, 인터포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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